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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군대 사용설명서 ‘대화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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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수습기자
기사입력 2013-03-04

▲ 소설가 김이정

남편은 가끔 아들의 면회를 혼자 가곤 한다. 지난해 잠시 지방에 가 있는 나를 기다리다 못 해 혼자서 아들의 면회를 다녀온 후부터 였다.

면회를 갈 때마다 남편은 기차를 탄다. 모처럼 경춘선을 타니 대학 때 엠티 가던 기분이 난다며 산 그림자를 고스란히 비춰내는 북한강 수면을 바라보며 홀로 아들의 부대로 간다.
 
면회소로 나온 아들과 1m쯤 떨어져서 천천히 걸어 식당으로 간 부자는 점심으로 삼겹살을 먹은 후 포만감을 안고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 허름한 당구장이다. 사실 당구를 싫어하는 나 때문에 남편은 당구를 칠 때마다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런데 그 당구를,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그것도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느긋하고 편한 맘으로 칠 수 있는 것이다. 두어 시간 후 당구장을 나온 부자는 더 가까워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읍내를 가로질러 버스터미널 근처의 작은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 잔씩 나눠 마신다. 그리고 부대에서 필요한 물건 몇 가지를 산 후 아들은 부대로, 남편은 집으로 향한다.

처음엔 면회를 함께 못 가 남편과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아들을 만나고 돌아온 남편의 들뜬 목소리를 들으면서 내가 안 간 게 오히려 다행이란 걸 깨달았다. 남편의 목소리는 첫 데이트라도 하고 온 설레임으로 들뜬 20대 청년 같았다.
 
부자가 언제 단둘이서 그런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억이 없다. 늘 내가 함께하거나 다른 가족들, 혹은 나와 아들의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남편과 아들은 둘이서만 여행을 간 적도 없었고, 집에서조차 둘이서만 있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부자관계란 동성임에도 모자관계보다 더 서먹한 경우가 많다. 지나치게 엄격함을 요구하는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문화가 남자들로 하여금 감정표현에 서툴고 인간관계에 미숙하게 만든 탓이다. 어느새 꼰대가 돼 버린 아버지와 도무지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자식들을 자주 보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고 근육량도 현저히 줄어든 아버지와 한창 물이 오른 자작나무 같은 아들은 작은 소읍의 식당에 마주앉아 함께 삼겹살을 굽는다. 머리를 맞대고 골똘히 당구공의 향방을 그리기도 하고, 필터를 갈지 않아 쓴맛만 강한 커피를 마주 앉아 마시기도 한다. 그 장면을 상상할 때마다 나는 가슴 한쪽이 싸해지는 단편 영화라도 보고 있는 기분이 되곤 한다. 그래서 그 후로 남편이 아들의 면회를 간다고 하면 나는 슬며시 빠져줬다.

대화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함께 삼겹살을 나눠 먹고, 함께 당구를 치면서 점수를 계산하고, 함께 커피를 마시며 새삼 달라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야말로 대화의 시작이 아닌가. 그러니 아버지들이여, 부디 혼자서 군대 간 아들의 면회를 가보시라. 그리고 장병들이여, 어느 날 문득 전화를 걸어 아버지에게 면회를 요청해 보시라.

*소설가 김이정 프로필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
소설집 <그 남자의 방>, <도둑게>
장편소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물속의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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