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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진의 생활 이야기] 김장과 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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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진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1-12-08

한국 주부들에게 해마다 연말이 되면 김장은 무척 큰 집안행사이다. 싱싱하고 속이 노릇하고 꽉찬 배추를 고르고, 빛깔 고운 태양초 고춧가루를 사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기도 하고, 마늘이며 파도 넉넉히 준비하고, 고소한 새우젓과 짭짤한 소금을 사기 위해 원정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김장 담그기의 시작이다. 되도록 질 좋은 국산재료를 구하기 위해 인맥을 동원하기도 하니 한 겨울 나도록 먹을 김장이 얼마나 중요하고 귀한 먹을거리인지 실감난다. 게다가 겨울이 지나 시큼해진 김장김치로 끓이는 찌개 맛은 한국사람 누구나 군침나게 하니 김치 없는 식탁은 참 허전할 것 같다. 이렇게 재료가 모두 공수되면 가족이 모두 모여 배추를 절이고 씻어서 이것저것 재료로 매콤하게 버무린 속을 배추에 넣어서 통에 넣으면 김장 끝!

이번 김장 때 가장 이슈가 된 것은 지난 가을부터 시작된 고춧가루 확보전쟁이 아닐까 싶다. 여름에 워낙 비가 많이 온지라 고추농사가 흉작인 탓에 고추 도둑이 극성이라 경찰서 주차장에 고추를 말리는 진풍경이 뉴스에 나올 정도로 고추값이 고공행진이었다. 예전보다 2배 이상 껑충 뛴 고춧가루 몸값 때문에 김장 비용이 부쩍 상승한 것도 사실이다. 그뿐이겠는가? 작년엔 김장철에 배추가 한 통에 3~4,000원 하는 통에 김장비용이 오르더니 올해는 갖가지 양념 비용이 껑충 뛰어 역시 김장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값싼 중국산이나 수입산을 쓰면 위생 상태는 물론이고 김치맛도 안심이 안 되니 주부들의 시름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우리 집은 이번엔 지인의 밭에서 40포기를 샀는데 배추가 농사가 잘 되어서 아주 튼실하고 맛도 좋았다. 그런데 한 포기당 500원씩 팔아도 원가에 턱없이 부족한데 그나마도 사가는 사람이 없어서 배추를 밭에 그냥 방치하거나 갈아엎기도 한다고 하셨다. 무도 달달하고 단단해서 식감도 좋긴 한데 워낙 농사가 잘 되어서 싸니까 덤으로 줘도 고마운 줄 모른단다. 사정이 이러니 작물을 길러 팔아야 수입이 되는 농민들에게 그 땀의 대가가 너무 약소할 수밖에 없다. 넓은 토지에 대단위로 재배하는 것도 아닌데 몇 달 공들여서 길러낸 자식같은 농산물이 제값도 못 받고 버려지면 그 마음이 얼마나 답답할까하는 마음에 배추를 가져오는 나도 편치 않았다.

그렇게 김장준비를 하는 와중에 뉴스에서 ‘FTA처리문제’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FTA는 분명 우리나라 단독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과 맺은 중요한 약속이다. 그러나 서로의 덩치가 문제이다. 미국의 한 주보다 작은 크기의 대한민국이다. 땅도 좁고, 인구도 적고, 자원도 없고, 국제적 영향력도 적다. 미국의 경제여파로 주식시장이 휘청하며, 한화(韓貨)의 가치도 너울거리고, 북한과의 불안한 관계로 인해 미국의 군사보호를 거절할 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이다. 아직도 작고 주변국가에 의해 압력을 받아야 하는 대한민국이다.

이미 시장을 다녀보면 우리나라에서 나온 신토불이 농수축산물인지 아닌지를 묻고 또 물어 봐야할 정도로 정말 세계 각국에서 온 것들이 많다.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먹고, 비싼 한우 대신 호주산 쇠고기를 식탁에 올리고, 동해에서 씨가 말라버려서 태평양에서 잡은 명태로 생태찌개를 끓이면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된다고 할 때만해도 온 나라가 들썩거렸는데 지금은 미국산이 가장 많이 소비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미국산이라고 하면 꺼려하는 성향이 있어 원산지를 속여 파니 우리 주변에서 미국산을 구경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란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 봐도 적은 땅에 적은 양의 농산물을 길러 파는 우리 농가는 미국의 광활한 토지에서 거대한 양을 수확해낸 농산물과 경쟁이 되지 않을 것은 뻔하다. 하다못해 나라 안에서 조금만 배추가 많이 재배되어도 값을 받지 못하는 판국인데 싸고 양 많은 수입산이 들어온다고 하면 채소도 한우처럼 특별한 날에만 먹는 국산이 되지 않을까 싶다.

농업을 하늘 아래 가장 근본이라고 생각했던 우리 조상들을 생각하면 우린 농업을 너무 등한시하는 건 아닌가 한다. 외국문화가 유입되면서 식생활도 서구화가 되니 먹을거리도 자연스럽게 서구화가 되었다. 밥심으로 살던 우리 조상들과 달리 햄버거 하나로도 한 끼를 채우고, 스테이크도 대중화되어 언제든 먹을 수 있다. 굳이 우리나라에서 나는 재료가 아니더라도 한 끼를 차리는 건 어렵지 않다. 오히려 이름도 어려운 서양식 향료와 소스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도시로, 도시로 몰리고, 텅 빈 시골은 농사지을 사람도 없어 논이 버려지고 밭은 황폐해지고 있다. 그 자리엔 공장이나 물류창고가 들어서서 우리 농작물은 뿌리 내릴 곳도 여의치 않아졌다.

어디 농업뿐이랴? 기업도 미국 앞에선 영락없는 다윗과 골리앗의 형상이다. 물론 성경 속 다윗은 돌멩이 하나로 거대한 골리앗을 통쾌하게 이겼다마는 우리 기업들도 그럴 수 있는 ‘한 방’이 있을까? 삼성과 애플이 휴대폰 판매를 놓고 법정공방전을 벌이는 것을 보면서 참 아쉬웠다. 스마트폰이라는 혁신 앞에서 그간 우리의 기술력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성은 분명 우리나라 일류 그룹이다. 이제까지 우리나라 휴대폰 판매에서 모든 경쟁자를 무릎 꿇게 만들었다. 노키아도 모토로라도 우리나라에서는 맥을 못 추고 삼성의 아성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달랐다. 애플이 스마트폰을 출시한다는 소식에 많은 소비자들이 돌아서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이폰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창의적이고 세련된 애플 컴퓨터에 대한 이미지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이번 일로 삼성도 자신들의 위치가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미국은 분명 우리에게 VIP고객이다. 우리 물건을 가장 많이 사주고 있고, 우리나라에 호의적인 손님이다. 그 손님이 이젠 우리에게 물건을 맘껏 팔겠다고 한다. 참 난감하다. 무조건 들어주자니 우리나라로선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무시하자니 우리가 수출할 게 수월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우리도 이득이 되는 게 있으니 약속을 하는 것이지만 득보다 실이 많으니 난감하다.

동네에 자그마한 슈퍼마켓이 2~3군데 있었으나 대기업의 슈퍼마켓이 하나 들어오니 동네 슈퍼마켓은 줄줄이 폐업을 했다. 저가물량공세를 펼치는 골리앗 슈퍼마켓을 이길 수 없으니 눈물을 머금고 떠나야 했던 것이다. 어딜 가나 그렇다. 천하장사가 덩치로 밀고 들어오는 데 당해낼 사람이 어디 있을까?

국민의 생계를 죽이겠다고 덤비는 국가가 있겠느냐마는 어쩐지 이마저도 미국의 눈치를 보고 미국에 잘 보여 나쁠 것 없다는 생각에 성급하게 비준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흥선대원군이 나라를 보호하자고 쇄국을 결정하였을 때처럼 강경하게 대문을 걸어 닫아야 하는 시대는 아니지만 국민의 살림을 대신 맡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내 나라 국민이 어떤 상태인지 다시 한 번 돌이키고 그 마음을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 국민들은 국회의장에서 몸싸움해서 이기는 것보다 미국과 싸워 자신들을 보호해줄 국회의원을 바라고 있다. 애처롭게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배추 한 포기, 고추 한 근에도 우리 농민들은 한숨이 깊다. 그 한숨소리가 나랏님에게도 들렸으면 좋겠다. 골리앗과 싸우러 나가는 다윗에게도 ‘신’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었는데 우리 국민은 믿는 구석은커녕 비빌 언덕도 없이 궁지로 몰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졸
- 이화여대 대학원 정치외교학 석사과정 수료
- 프리랜서 논술 강사 및 진유헌 보습학원 부원장 역임
- 現 육아와 겸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

박혜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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