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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한국기독교, 우리가 알아야 할 어둠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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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연주 기자
기사입력 2019-04-15

 

 

 

 

 

 

 

 

 

 

 

 

 

 

 

 

 

[뉴스쉐어=양연주 기자] 1910년을 전후로 조직을 정비한 한국기독교회는 교회를 지키고 확장, 성장하는데 집중하게 됐다. 그 결과 조선총독부의 지배체제에 편입됐으며 일제강점기 말, 한국기독교의 친일은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1938년 제27회 총회에서 장로교회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신사참배 결의 이전부터 23개 노회 중 17개 노회가 이미 자체적으로 신사참배를 실행하고 있었다.

 

한국기독교는 신사참배뿐만 아니라 일본의 침략전쟁에도 협력했다. 장로교회는 중일전쟁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38년 7월 7일 새벽 일본의 황실과 황군을 위해 기도하고 국가 의식을 행했다.

 

장로교회는 총회 차원에서 신사참배를 결의(1938년 제27회)하기 전부터 전승 축하회 86회, 무운장구기도회 2042회를 실시하고 국방헌금 45만 4539원을 거둔 상태였다고.

 

또 1940년 제29회 총회에 보고된 바에 의하면 1937년부터 1939년까지 3년에 걸쳐 전승 축하회 604회, 무운장구기도회 8953회, 시국 강연 1355회, 국방헌금 158만 424원, 휼병금 17만 2646원, 유기 헌납 308점, 위문대 1580개 위문회 181회를 치렀다.

 

장로교회는 ‘애국기헌납기성회’를 만들어 활발한 비행기 헌납운동을 한 결과 1942년 2월 10일 전투기 1대와 기관총 7정을 마련할 수 있는 15만 원을 일제에 바쳤다. 이 금액은 1930년대 초 농가 1년 수입의 160배 이상의 금액이다. 

 

이 결과 1942년 9월 20일 일본해군성으로부터 비행기 명명식(命名式)에 초청돼 감사장을 받았다.

 

또 일본육군성은 1942년 11월 17일 경기도 내에서 헌납한 비행기 55대 중 하나를 ‘조선장로호’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장로교뿐 아니라 감리교회도 1944년 교단 상임위원회의 결의로 ‘감리교단호’라는 이름을 붙인 애국기 3대를 살 수 있는 돈 21만 원을 일제에 헌납했다. 모금은 성도의 헌금 전액과 교단 소속 교회 병합에 의한 교회 부동산을 처분해 충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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