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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독립 운동가 스코필드 박사를 아시나요?"

제17회 스코필드 박사 추모 기념식, 4일 오전 10시 서울대 수의과대학 스코필드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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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귀숙 기자
기사입력 2019-04-03

▲ [제공=EBS 지식채널e]    

 

[뉴스쉐어=조귀숙 기자] 3ㆍ1운동 당시 외국인 독립운동가로서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린 사람이 있다.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다.

 

그의 서거 49주기를 기념하는 '제17회 스코필드 박사 추모 기념식'이 오는 4일 오전 10시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스코필드홀에서 개최된다.


서울대학교가 주최하고 (사)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와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이 주관하는 이 날 행사에는 마이클 대나허(Michael Danagher) 주한캐나다대사, 이용기 서울남부보훈지청장,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등을 비롯한 각계인사, 회원, 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기념식, 스코필드 장학증서 수여, 기념강연 순으로 진행된다.  


한편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한국명 석호필(石虎弼), 1889년 3월 15일∼1970년 4월 12일) 박사는 영국에서 출생했으나, 1907년 캐나다로 이주했다.


한국인을 동포처럼 사랑했던 그는 1919년 3ㆍ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운동 현장을 직접 카메라에 담고 독립운동의 실상을 기록했다.


‘제암리 학살 사건(1919년 4월 15일)’ 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기록을 남겼으며, 한국 선교사 대표로 극동지구 선교사 전체회의에서 일제의 만행을 알리고 영자신문 ‘서울프레스’가 일제의 정책을 옹호하자 이를 비판하는 등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박사의 한국에 대한 사랑은 광복 이후에도 계속됐다. 1958년 8월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한국에 돌아와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의병리학 교수로 있으면서 보육원을 후원하고 직업학교를 돕는 등 사회 봉사활동에 헌신했다.


1968년에는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수여받았다.


1969년 초부터 심장성 천식이 발작해 치료를 받다가 1970년 4월 1일 81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그의 장례는 4월 16일 광복회 주최의 사회장으로 거행됐고,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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